운문산 서쪽에 위치하는 대비사는 557년(新羅 眞興王18년)에 신승이 호거산(虎踞山)에 들어와 3년후인 560년(신라 진흥왕 21년)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7년 걸려 5갑사를 대작갑사(현 雲門寺)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세웠는데, 서쪽의 소작갑사(小鵲岬寺) 또는 대비갑사(大悲岬寺)라고 한 다섯갑사 중의 하나로 신라 진평왕 22년(600년)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중창한 사찰이다.
이 대웅전은 16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갖춘 건물로 전체구성은 짜임세가 있고 공포도 건실하게 짜여있다. 불단내부에 조선 숙종11년(1685)에 대웅전의 불탁을 수장하고 이듬해 법당을 단청하였다는 묵서가 발견되어 이 기록을 근거로 이 건물의 중건 년도를 숙종(1674년∼1720년)년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후불정(後佛幀)은 1695년(康熙34년)에 제작된 것으로 건축시기는 불정 보다 앞서 건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건물의 구조는 잡석 기단 위에 자연석주초를 깔고 상부에 원주를 세웠으며 기둥머리에는 창방과 평방을 두고 그 위에 다포(多包)를 구성하고 기둥사이에 각각2개의 공간포 간격이 정연하며 천장은 우물 천장이다. 정면3칸, 측면3칸의 규모로 전면의 길이가 34측(10.2m) 측면의 길이가 24측(8.6m)인 전형적인 다포계 맞배지붕이고 공포는 내3출, 외2출목으로 조선중기 다포계 맞배집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둥은 모두 민 흘림의 원주를 세우고 상승감을 위하여 모서리 귀둥을 조금 높이는 귀 솟음 기법과 안정감을 위한 안 쏠림기법을 사용하였으며 여러번 중수되었으나 그 원형은 변하지 않았다. 단청(丹靑)이 퇴색하여 백골이 드러나있으나 사찰건축 연구에 중요한 전각이다.
이 사찰은 당초 박곡리 마을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전해지며 사원의 명칭을 대비사(大悲寺)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라는 뜻으로 붙어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당시 신라 왕비가 수양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사찰 입구의 많은 부도가 고승 대덕 분들이 주석(主席)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료: 청도군청 문화관광)
토종 삽살개인 구룡이(수컷)와 반야(암컷).
주차장까지 따라나온 구룡이와 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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