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逍遙堂 朴河淡:1479∼1560)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에 1809년(純祖9)에 박정주(朴廷周:1789∼1850)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으로 운강 박시묵(雲岡 朴時默)이 1824년(순조24)에 중건하고 1905년 박순병(朴淳炳)이 다시 중수하였다. 소요당 박하담은 조선 중종(1506∼1543)때 사미시에 급제하여 사산감역(四山監役), 사재감봉사(司宰監奉事), 등을 역임하고 을묘현량에 천거되었으나 불사하고 산동지역에 사창(社倉)을 창설하여 환곡법(還穀法)을 실시케 하였다. 을묘사화(乙卯士禍)이후 퇴계 이황 이 관직에 나올 것을 청했으나 거절하였고, 그 뒤 정헌대부 이조판서에 증직 되었다. 또한 삼족당 김대유 와 같이 도주관(道州館)을 중수하였다.
운강 박시묵(雲岡 朴時默)은 후학양성에 크게 주력하였고 고종9년(1872년) 강학소절목(講學小節目)을 마련하여 교육기관으로서 큰 성과를 올렸으며 통정대부 좌승지에 증직 되었다. 이 주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별도로 자형으로 되어 쌍 자형을 이루고 있는 대 주택으로 안채, 사랑채, 중사랑채, 행랑채, 대문채, 곳간채와 가묘를 갖추고 짜임새 있는 구조와 필요에 따라 세분된 각 건물의 평면배치 및 합리적인 공간구성 등이 한층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류 주택이다(자료: 청도군청 문화관광)
중요민속자료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는 운강고택
만화정(萬和亭)은 운강고택의 부속건물로 운강 박시묵(朴時默)이 1856년경 건립한 정자로 수학을 강론하던 곳이며 동창천을 끼고 울창한 숲 언덕에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동창천이 내려다보이는 운치를 배려해 놓았다. 평면구성은 한칸마루를 중심으로 서측에 방 1칸, 동측에 2칸의 통방을 배치하고 막돌을 쌓은 기단은 위에 장대석 테두리를 두른 2중 기단을 두었고 상부가구는 5량가로 부채처럼 넓게 초각한 판대공 위에 종도리와 중도리 장여가 함께 놓였는데, 중도리, 장여에는 소로를, 마루도리 장여에는 용두를 받쳐 놓았다. 원주의 상부에는 초각한 양봉을 끼워 바깥쪽은 연꽃을 안쪽은 연봉을 위쪽에 새겼고 보머리 위쪽은 쇠서형의 장식을 간주는 봉두를 장식하였다. 누마루에는 3면에 헌함(軒檻)을 돌려 바닥을 확장하였고 처마를 길게 내밀고 네 모퉁이에는 활주를 세웠다. 주변의 경관이 이름답고 건물 또한 견고하고 섬세하며 6.25때 이승만대통령이 피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동창천에 왔을 때 숙식했던 곳이기도 하다.
선암서원은 동창천 물이 굽이쳐 흐르는 선암(仙巖))에 자리잡고 있다. 삼족당 김대유(三足堂 金大有:1479∼1552)선생과 소요당 박하담(逍遙堂 朴河淡:1506∼1543)선생 두분을 향사(享祀)하던 곳으로 한국학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초창은 선조1년(1568년) 매전면 운수정(雲樹亭)에 두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하여 향현사(鄕賢祠)라 하였다. 이곳은 1577년(선조10) 군수 황응규(黃應奎)의 주선으로 사우(祠宇)와 위패(位牌)를 옮겨 선암서원이라 개칭하였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 되었다. 지금의 건물들은 고종15년(1878) 소요당(逍遙堂) 선생의 후손들이 다시 중창하여 선암서당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도군청 문화관광에서 스크랩한 선암서원(유형문화재 제79호) 사진
정침은 정면5칸 측면1칸으로 우에서 좌로 부엌, 방, 마루, 방의 순서로 평면이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인 득월정(得月亭)은 정면4칸, 측면1칸의 소규모 건물로 정침과는 토담으로 내.외 되어있고 방2칸, 대청2칸의 단순한 평면인데 특히 가구와 헌부(軒部) 구성에 주목할 기법이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으로 처마는 선자(扇字)가 걸린 귀보다 중앙부분이 튀어나오도록 긴 서가래를 걸었고 대청에 보는 3량 가로 걸작이다. 평면구성은 안채, 득월정(得月亭), 행량채, 대문채가 자를 이루고 그 뒤편으로 북향한 선암서당(仙巖書堂)이 있다. 이 건물은 정면5칸 측면2칸으로 가운데3칸을 대청마루를 깔고 양쪽에 방을 두었고 포작은 외1출 내3출목을 조직하였다. 선암서당의 뒤편 장판각에는 보물로 지정된 배자예부운략판목(排字禮部韻略板木)과 지방문화재 해동속소학판목(海東續小學板木) . 14의사록판목 등이 보관되어 있다.
선암서원 뒷편에는 임란때 천성만호 박경선이 동창천 맞은편에 있는 어성산전투에서 봉황애 절벽으로 왜장을 안고 떨어져 순국한 추모비와 정조때 서학으로 이름높은 이가환이 참가한 임란창의의사(壬亂倡義義士) 전적지(戰跡地) 기념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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