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벽루는 1321년에 고려 충숙왕대에 당시 합주지주사(陜州知州事) 김영돈(金永暾:1285-1348)이 창건하였으며, 이 사실을 기문으로 적은 이는 안진(安震:-1360)이다.
이 누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대야성(大耶城)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黃江) 정양호(正陽湖)를 바라볼 수 있게 지어져 오래 전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되었다.
이황(李滉), 조식(曺植), 송시열(宋時烈) 등과 같은 조선시대 최고 명유의 글이 누각내부 현판에 걸려 있으며, 뒤 암벽에는 함벽루라 새긴 송시열의 글씨가 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들보 5량(樑)으로 조성된 이층 목조기와집이며,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도록 배치된 점은 특히 유명하다. (자료: 합천군청)
이 누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대야성(大耶城)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黃江) 정양호(正陽湖)를 바라볼 수 있게 지어져 오래 전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되었다.
이황(李滉), 조식(曺植), 송시열(宋時烈) 등과 같은 조선시대 최고 명유의 글이 누각내부 현판에 걸려 있으며, 뒤 암벽에는 함벽루라 새긴 송시열의 글씨가 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들보 5량(樑)으로 조성된 이층 목조기와집이며,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도록 배치된 점은 특히 유명하다. (자료: 합천군청)
황강변 나직한 산봉우리에 위치한 대야성은 어느 때 어느 집단에 의해서 축성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단지 562년 신라 제24대 진흥왕때 장군 이사부가 가야를 점령하고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 성벽은 산비탈을 깎아내려 가파르게 만든 삭토법을 써서 다듬었으며 현재 높이 1m 정도다. 이 성터에서 허물어진 성벽 이외의 다른 유적들은 발견할 수가 없다.
이 지역은 그 옛날 신라와 백제 간의 격전지로 642년(선덕여왕 10)에 백제의 윤충 장군이 대군을 거느리고 대야성을 공격했다. 이 때 대야성을 지키던 신라의 김품석 장군(김춘추의 사위)은 주색에 빠져 신망을 잃어 부하들은 백제군에게 항복했다. 신라 장군 죽죽만은 사수할 것을 간청했으나 주장은 묵살되고 마침내 성이 함락되자 김품석은 가족과 함께 자결했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죽죽은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이 곳에서 전사했다. 대야성 전투를 증명하듯이 성터에 산라 충신 죽죽의 비만 외롭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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