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일시: 2014.7.20(일)
태고정은 1479년 (성종 10)에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건립한 것이다. 원래는 종가 안에 붙어있던 별당 건물이었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25)에 불타고 일부만 남아 있었다. 이를 1614년(광해군 6)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각각 2칸씩 대청마루와 방을 꾸몄다. 대청 앞면은 개방되어 있는데 대청 앞 기둥 사이에는 2층으로 된 난간을 설치하였다. 태고정은 그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가구나 세부가공이 정교한 편이며, 조선 전기 건축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인 가치가 크다
도곡재는 사육신 중 한 분인 박팽년 선생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 묘골마을 내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대사성을 지낸 서정공 박문현(1789-1875)이 주택으로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19세기 중엽부터 도곡공 박종우(1587-1654)의 후손들이 공부방으로 사용하면서 선생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다. 박종우는 인조 때의 문신으로 낙재 서사원을 사사하였고, 한강 정구 문하에 출입하였으며, 문장과 행의가 추앙되었다고 『대구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도곡재는 조선시대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실례를 잘 보여주며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이 3개 권역으로 분리되어 일곽 안에 잘 보존되어 있다. 좌측으로 낸 대문채를 들어서면 남향하여 사랑채에 해당하는 도곡재가 자리하고 사랑채 우측에 연한 중문채를 들어서면 ㄱ자형의 안채와 우측의 고방채가 자리하여 튼 구자형(口字形)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인 도곡재는 원래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였으나 후대에 재실로 사용하면서 왼쪽에 퇴칸 1칸을 달아 내고 대청을 넓혀 누(樓)처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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