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백경중 하나로 손꼽히는 적상산은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마치 여인들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적상이라 이름 붙였다는 산으로 해발 1,034m의 기봉이 향로봉(1,029m)을 거느리고 천일폭포, 송대폭포, 장도바위, 장군바위, 안렴대등의 자연명소를 간직한 채 정상 분지의 양수 발전소 상부댐인 산정호수(적상호)와 고색창연한 적산상선, 안국사등 유서 깊은 문화 유적이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산행일시: 2012.5.5(토)
산행코스: 서창 공원지킴터-장도바위-서문-향로봉갈림길-향로봉-향로봉갈림길-안국사갈림길-안렴대-안국사-안국사갈림길(원점회귀)
적상산성 서문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이 바위는 고려 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적상산성은 적상면(赤裳面)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창리·포내리·괴목리·사천리 등 4개 리에 걸쳐있는 적상산 위의 분지를 에워싸고 있는 절벽을 이용해서 석성(石城)을 쌓은 대표적인 산성이다.
적상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에 축성되어 한 때 방치되기도 하였으나, 고려 시대에는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의 피난처가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을 지키는 요지가 되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사고가 폐지되고,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현재는 성벽 일부의 보존과 함께 유지가 남아 있으며 적상산성 안에는 안국사가 이건 되어 있고, 사고가 복원되었으며, 양수발전소 상부댐 등이 있다.
적상산의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 때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했다고 한다.
또한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본래 적상산 분지에 위치했던 이 사찰은 고려 충렬왕 3년(1277), 월인화상이 창건한 것이라고도 하고, 조선 초 무학대사가 국가의 앞날을 위해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 5년(1613) 사찰을 중수하고 그 다음 해에 창건된 적상산 사고를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해 왔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보경사 또는 상원사 등으로 부르던 것을 영조 47년(1771)법당을 중창하고 안국사라 했다.
더러는 산성 안에 있는 절이라 하여 산성사라고도 불렸으며 부처님 1천불을 모신 천불전과 보물 제 1267호인 안국사 괘불이 있으며 현재의 안국사는 본래의 위치가 양수발전소 상부댐(적상호)에 잠기게 되어 1992년에 옮겨 세운 것이다.
안국사는 본래 보경사(寶境寺) 또는 산성사(山城寺)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무주양수발전소 상부댐 건설공사로 인해 수몰됨에 따라 1992년 8월, 건물을 해체하고 현재의 위치인 옛 호국사지(護國寺址)로 옮겨 복원되었다
안국사 극락전 내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는데, 불상의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조형성은 매우 뛰어나다. 불상 조성기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다.
안국사 경내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1998년 사월 초파일에 개관하였다. 현 주지 원행스님이 안국사에 부임한후 세계각국 부처님과 불교유물을 수집, 전시하여 덕유산 국립공원 적상산 지구를 찾는 탐방객들과 청소년들에게 우리 문화와 세계각국의 불교문화를 비교 관람할 수 있도록 한국, 중국, 일본, 티벳, 태국, 미얀마를 비롯하여 세계 20여 개국 불교국가의 불상과 탱화, 그리고 불교 유물 및 도자기 등 500여점 이상을 항시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