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람/경북권

안동 농암종택

그리운 바람길 2015. 10. 27. 20:04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 이현보의 종택이다. 이현보는 1504년(연산군 10년)에 사간원정언으로 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이다.  
 농암종택이 있던 곳은 분천마을, 하지만 1976년 안동댐 건설로 분천마을이 수몰되었다. 이후 안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전되어 있던 종택과 사당, 긍구당(肯構堂)을 영천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 씨가 한곳으로 옮겨 놓았다. 2007년에 분강서원(汾江書院)이 재이건되었으며, 지금은 분강촌(汾江村)이라고도 불리운다.또한  농암종택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인증 우수 전통한옥문화체험 숙발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농암선생은 조선 중기때 문신으로 농암가와 어부가로 유명하다.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농암종택은 600년의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는 고택이다. 안동부사로 재직하던 1519년에 여자와 천민 가리지 않고 안동 부내 80세 이상 노인을 초청하여 장수를 축하했다

 

 

 

 

 대문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본채를 지나면 이어서 별채인 긍구당, 명농당 등을 만날 수 있다.  고려말 1370년경 능암 선생의 고조부인 이헌이 지어 손님을 맞는 별당으로 사용했던 것을 중수하여 긍구당이라 하였다 

 

 

 긍구당은 농암 이현보 선생 종택의 별당 건물이다. 농암 선생 종택의 상징적인 건물로서 영천이씨 예안파 파조인 소윤 이헌 공이 분천동에 지은 것이다. 종택과 문중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대개 이곳에서 결정되었다. 소소전에 의하면 본 건물은 영천이씨의 분천동 입향조인 고려말 이헌이 창건하여 접객별당으로 사용하던 것인데 후에 농암이 중수 승계하여 당호를 긍구당이라 하였다고 한다."긍구" 는 '조상의 유업을 길이 이어가라' 는 뜻이다.  선생이 태어났고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이 서원은 1613년(광해군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현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향현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후 1700년 (숙종26)에 서원으로 개편하여 선현 배 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고종5)년에 훼철 되었으며, 1967년 옛터 서쪽에 복원하고 영정을 봉안하고 석채례를 행했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게 되어 도곡재사를 옛터에 서원을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승덕사, 8칸의 흥교당, 6칸의 극복재, 6칸의 경서재, 유도문, 12칸의 주소, 협문 등이 있다. 사당인 숭덕사에는 이현보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인 흥교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마루는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등에 사용 되며 동쪽 협실은 재임과 별유사의 방으로, 서쪽 협실은 헌관실로 사용하고 있다. 극복재와 경서재는 각각 동재와 서재로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곳이며, 정문인 유도문은 향사시 제관의 출입 문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는 1477년(세조 13) 인제현감 이흠(麟蹄縣監 李欽)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시호(諡號)는 효절(孝節)이다. 1498년(연산군 4)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경상도관찰사·지중추부사(慶尙道觀察使·知中樞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신도비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이수(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 없이 귀부(거북 모양의 빗돌받침) 위에 비신만 세웠으며, 비신의 높이는 1.9m, 너비는 0.84m이다. 비신의 머리는 반원형으로 다듬어져 있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별채 "강각"과 "애일당"이 위치한다. '애일' 은 부모가 살아계신 나날을 아낀다는 뜻으로 효를 실천하기 위해 지은 애일당이다.  67세 농암이  94세 아버지를 위해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춘 곳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 농암(聾岩) 이현보(李賢輔)의 별당이다. 1512년(중종 7) 이현보의 나이 46세 때 부모를 위하여 분강(汾江) 기슭의 농암(聾巖:귀먹은 바위) 위에 처음 지었으며, 1548년(명종 3)에 중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다시 세운 것이다. 원래 낙동강 연안의 분천리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어 1975년 원래의 위치에서 서쪽으로 1km쯤 떨어진 영지산(靈芝山:436m) 남쪽 기슭으로 이건하여 보존하고 있다. 농암 선생이 이 당을 짓고 94세의 노부의 늙어감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에서 애일당이라 하였다 한다

 

 

 농암각자(聾巖刻字)는 애일당 대(愛日堂 臺)아래 강변의 대암벽에 각자면을 마련하고 새겨져 있다. 한 개의 바위가 아니고 3개의 각기 다른 바위의 입면에 편리하게 액면을 만들어 문자를 종횡으로 배열하고 있다. 글자는 한자가 대략 75cm정도의 큰 글씨로 새겼다. 경치 좋은 곳의 바위벽에 글자를 새기는 것은 그 유래가 신라에까지 소급된다고 하나, 이와 같이 큰 글씨는 다른 곳에서는 찿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암벽의 크기는 ′농암선생′(聾巖先生) 4자는 길이 5m, 두께 2.5m, 구장 2자는 길이 4m, 너비 3m, 두께 3m, ′정대′(′亭臺′) 2자는 길이 4m, 너비 2m, 두께 2m의 크기이다. 이 각자들은 1976년 1월 안동댐 수몰로 분천동 산 11-1번지에서 현위치로 이건한 것이다.

 

 

 

 

 

 

 

 

 

 

 산책하기 좋은  "예던길" 은 농암저택에서 도산서원까지 이어지는 약 10km의 길로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져 풍광이 아름답다. 퇴게 이황선생이 숙부인 종재 이우 선생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하여 청량산으로 걷던 길이라 하여 "퇴계 오솔길"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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