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가 일으킨 임진왜란(1592년)과 정유재란(1597년)시기 우리나라 동남해안을 중심으로 쌓은 일본식 성을 말하며, 우리나라에 약 30여개가 축조되었다.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시기 1593년(선조26)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지휘하여 쌓은 일본식 성이다. 부산진을 함락시킨 왜군은 경주, 안동, 문경 등 경상도 내륙지방의 진군을 위해 이곳에 왜성을 쌓아 거점을 확보하였다. 명군과 왜군의 협상이 서생포왜성에서 진행되면서 퇴각한 왜군들이 이곳에서 전열을 정비하였으며, 정유재란시기 제1대였던 가토의 군대가 재주둔하여 조선 침략의 교두보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서생포왜성의 방비를 위해 울산에 왜성을 축조할 정도로 요충지이며, 한때 약 7,000명의 병사가 주둔하였다.
평야지대와 산등성이를 연결하여 만든 평산성(平山城)인 서생포왜성은 산 정상에 본성을 두고 정상부터 평지까지 모두 3단의 공간(本丸, 二之丸, 三之丸)으로 나누기도 하며, 크게는 내성과 외성의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1593년 성을 쌓을 당시 출입문은 모두 11곳이며, 출입문은 입구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입구 형태를 사각형의 내외옹성형, 엇갈림형, 직선형 등으로 만들고, 바깥에서 안쪽으로 볼 수 없도록 하였다.
본성에는 동서로 성벽을 둘렀고, 내부에는 평지가 조성되어 있다. 성벽 곳곳에는 원래 출입구를 폐쇄하거나 성벽을 내어 달았던 흔적이 확인된다. 혼마루[本丸]의 서쪽으로 치우쳐진 곳에 천수각터가 남아있다.성 내부는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충신들을 배향하기 위해 창표당(蒼表堂)을 세웠으나 지금은 파괴되어 터만 남아 있다.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 직후부터 1895년까지 약 300년 동안 조선 수군(水軍)의 동첨절제사영(同僉節制使營)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자료: 울산광역시청 관광정보)
방문일시: 2014.5.2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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