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람/경남권

양산시 원동면 가야진사

그리운 바람길 2010. 8. 29. 21:30

 

가여진사는 대.중.소사 중 중사에 속하는사독( 四瀆)의 하나로 친다. "독"은 나라에서 신성시 하여 봄이나 가을 또는 가뭄이 들었을 때 제사를 지내던 큰 나루터나 강을 말하며, 남쪽에서는 공주와 연기의 웅진나루,서울의 한강, 양산의 가야진 등이 있다. 민속놀이 "가야진용신제"는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가야진사제례"를 바탕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이 가야진사는 낙동강 나루터신을 모시고 있는 제당으로, 신라가 가야를 정벌할 때 왕래하던 나루터에 자리하고 있다. 공주의 웅진과 함께 나라에서 향촉과 칙사를 보내어 제사를 올리고 장병들의 운을 빌던 곳이다. 앞면 1칸,옆면 1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맞배 지붕을 하고 있다.
목조 건축물이며 내부에 들어서면 제를 올릴 때 사용하는 제상이 있고, 그 위에 가야진사 전설의 주인공인 머리가 셋 달린 용이 그려져 있다.
현재의 사당은 조선 태조 6년(1406)에 세운것으로 전하며 옛 건축물로서 민속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 마을 사람들은 제를 지내며 가뭄이 극심할때 기우제를 올리기도 한다.

 

답사일시: 2010년 8월 28일(토)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사 옆에 "가야진용신제 전수관"이 몇년 전에 약 8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건립되었으나, 4대강 사업으로 곧 헐리게 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가야진사도 확실한 위치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근처에 옮겨져 다시 복원될 예정이라고 한다.

 가야진나루터는 신라 눌지왕때 가야국을 점령하기 위해 왕래하던 곳으로, 초창기에는 국가제의인 중사를 통해 장병들의 무운과 수로 안전, 풍농, 풍어를 기원했다고 한다.

 

 

 

 

 

 

 

 

 가야진사 사당 내부에는 신주위패가 모셔져 있고, 벽에는 용 세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 세마리의 용은 전설속의 남편 용인 황룡, 아내용인 청룡, 그리고 첩용인 청룡을 표현한 것 같다.

 

 가야진사 옆에는 가야진용신제 전수관이 있으며 낙동강 너머 용산을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전수관은 가야진용신제의 효율적인 보존과 전승, 대외적인 홍보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낙동강 너머 김해 상동 용산과 용산마을

 

 

 전설속의 용이 살았다는 용소

 

 

가야진사에는 용신에 대한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전설은 신라가 가야를 징벌하기 위해 이 일대를 전초기지로 삼을 때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옛날 양산고을을 옥당이라 칭할 때의 이야기다. 양산군수의 명을 받은 조 사령(使令)이 경상감사가 있는 대구로 길을 떠났다.  

그런데 원동 용당리(현재의 가야진사 부근)로 접어들 무렵부터 여인 하나가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용당리는 인근 나루터로 인해 사람 통행이 잦은 곳이라 조 사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해질 무렵 주막에 들어선 조 사령은 인근 나루터로 북적이던 주막이 웬일인지 썰렁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주모에게 하룻밤 묵을 것을 청하고 방으로 들었는데 주모가 난처한 얼굴로 주막이 썰렁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요 며칠 새 주막에서 묵은 남정네들이 하루에 한명씩 야밤에 커다란 구렁이에 놀라 기절했다는 것이다.  
방안에서 쉴 준비를 하고 있던 조 사령은 마침 밖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끌려 밖을 내다봤다. 옆방으로 들어가는 여인은 다름 아닌 낮에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여인이었다. 꺼림칙함에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던 조사령도 밤이 깊어지자 단잠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여인이 들었던 옆방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에 조 사령은 잠을 깨고 말았다. 밖으로 나간 조 사령은 용기를 내어 여인을 불렀다. 방문이 열리자 안을 들여다 본 조 사령은 깜짝 놀라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당연히 방안에 있어야할 여인은 보이지 않고, 흡사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형상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벌벌 떨고 있던 조 사령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움직이려 하는데 놀랍게도 구렁이 형상의 괴물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용이 되어 승천하기 직전의 이무기로 저 앞 황산강 용소에 사는 황룡의 본처라며, 간곡한 청이 있으니 제발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용소에는 자신과 남편 황룡, 첩룡인 청룡 세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데 황룡이 첩룡의 꾐에 빠져 자신에게 주어야 할 여의주를 첩룡에게 주고 함께 승천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일 정오에 남편 황룡과 첩룡이 용소에서 싸움을 벌이도록 할 터이니 첩룡을 죽여 달라고 했다.  

조 사령은 신과 마찬가지인 용을 죽일만한 용력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이무기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면 복이 따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음날 조 사령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배를 저어 용소를 찾았다.  

정오가 되자 이무기의 말처럼 황룡과 청룡이 강물 위로 솟구치며 싸우는 것이었다. 조 사령은 싸우는 용들을 향해 준비해간 장검을 힘껏 내리쳤다. 커다란 비명을 울리며 용 한 마리가 강물로 떨어졌고 주변 강물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어제 만난 본처 용이 청룡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본처 용은 울부짖으며 조 사령이 죽인 것은 첩룡이 아니라 남편인 황룡이라는 것이었다. 화가 난 본처 용은 조 사령을 원망하며 용궁으로 함께 가야한다며 조 사랑을 끌고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이 마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이 뒤따랐다. 마을 사람들은 용이 노한 것이라고 믿고 해마다 용신제를 지냄으로써 재앙을 이겨내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가야진용신제(伽倻津龍神祭)다.

 

 제를 지낼 때는 돼지를 용소에 던지면서, “침하돈(沈下豚: 돼지가 가라앉습니다)!”을 세 번 반복하여 외치며 용신에게 제물을 바친다.  용신제의 제상에는 반드시 메 세 그릇과 잔 세 개, 탕 세 그릇을 놓는다. 그것은 용소에 황룡 한 마리와 청룡 두 마리가 살고 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