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은 조선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광릉은 같은 산줄기에 좌우 언덕을 달리하여 왕과 왕비를 각각 따로 모시고, 능 중간 지점에 하나의 정자각을 세우는 형식인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서, 이러한 형태의 능으로 최초로 조성되었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이 세조, 오른쪽 언덕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명을 남겼다. 이러한 세조의 유언에 따라 이전까지 석실로 되어 있던 능을 회격(灰隔)으로 바꾸어 부역 인원을 반으로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였다. 봉분 주위에 둘렀던 병풍석을 생략하면서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신상은 난간석의 동자석주에 옮겨 새기는 등의 상설 제도를 개혁하였다. 능침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향로와 어로는 유실되어있는 상태이다. 본래 정자각은 세조의 능역 앞에 있었으나, 정희왕후의 능을 조성하면서 두 능의 사이로 옮겨 지은 것이다(자료: 문화재청)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능(陵)이 42기이고,원(園)이 13기이며,묘(墓)가 64기이다. 42기의 능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 원비 신의왕후의 능),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세계에 그 유례를 찿기 힘들며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런의미에서 조선왕릉은 인류의 보편적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왕조의 무덤은 무덤 주인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 하는데,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며 원(園)은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친(왕의 후궁이나 종친)과 왕세자·왕세자빈,황태자·황태자비의 무덤을 말하고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墓)라고 한다.
조선왕릉은 조선왕실의 의례서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근거하여 조성하였으며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왕과 왕후를 하나의 봉분에 안장한 합장릉을 기본으로 삼았으나 왕릉에 따라 다양한 유형(단릉, 쌍릉, 합장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릉,삼연릉)으로 나타난다.
방문일시: 2017.8. 5(토)
광릉초입에 있는 하마비: 조선왕릉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하마비. 선왕선비를 모시는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친행을 한 왕조차도 이곳 하마비에서부터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야 했다.
'길바람 > 기타지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파정(서울미술관) (0) | 2017.09.22 |
---|---|
백사실계곡(백석동천) (0) | 2017.09.22 |
광릉 국립수목원(광릉수목원) (0) | 2017.08.11 |
낙산사 홍련암 (0) | 2016.11.13 |
서울 하늘공원 (0) | 2016.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