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원표(元表)가 세운 암자에다 860년경 신라 헌안왕(憲安王)의 권유로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창건하여 선종(禪宗)의 도입과 동시에 맨 먼저 선종이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졌다.
경내에는 국보 제44호인 3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55호인 동부도(東浮屠), 보물 제156호인 서부도, 보물 제157 ·158호인 보조선사 창성탑(彰聖塔) 및 창성탑비 등이 있다.
그 뒤 끊임없는 중창과 중수를 거쳐 6·25전쟁 때 소실되기 전까지는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대찰이었다. 그러나 공비들이 소굴로 이용하였던 이 절에다 도주하기 전에 불을 놓아 대웅전 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고, 단지 천왕문(天王門)과 사천왕(四天王)·외호문(外護門)만 남았다.
불타버린 대웅전은 서쪽을 향하여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 중층팔작(重層八作)지붕의 큰 건물이었다.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2층까지 통해서 한 방으로 만들고, 중앙 단상에는 금동석가여래상과 양협시불을 안치하였는데, 구조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수한 수법이다. 이후 주민들은 대적광전을 다시 지어 대웅전에 있었던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사천왕문 안에 봉안된 사천왕상은 1780년(정조 4)에 조성된 국내 목각상의 대표적인 것으로, 최근 중수하여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나, 복장 속의 비장품은 도굴꾼들에 의하여 망가진 상태로 방치되었다. 현재 사천왕문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료: 보림사 홈페이지)
방문일시: 2015.1.31(토) 가지산 산행후 방문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는 사천문(四天門)에 걸려져 있던, 1780년에 지어진 "보림사천왕금강중신공덕기(寶林寺天王金剛重新功德記)"의 내용에 따르면 이 네분의 사천왕상은 정덕 을해년(正德 乙亥年: 조선 중종 10년, 서기 1515년)에 계문(戒門)스님의 주도 하에 조성되었으므로, 국내에 현존하는 사천왕상가운데에서 가장 오래 되었으며, 특히 임진왜란이전의 사천왕상으로는 유일한(임진왜란의 전란중에 국내 유수 사찰들의 사천왕상이 모두 병화를 입어 소실되었다)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국보 제117호 .좌상높이 283cm, 무릎너비 210cm. 결가부좌를 한 비로자나부처님이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철불상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으며, 특히 부처님의 왼팔 뒷면에 가로8행,세로4~10자로, 총 69자가 양각된 명문(銘文)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인정된다.그 명문의 내용에 의하면 신라 헌안왕 2년(서기 858년)에 무주 장사(武州 長沙 ,현재의 전라도 광주와 고창지역)의 부관(副官)인 김수종(金遂宗)의 시주에 의하여 철 2500근으로 조성하였다.
국보 제 44호. 남탑높이 540cm, 북탑높이 590cm, 석등높이 312cm. 보림사 대적광전 앞에 세워져 있으며, 상륜부까지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과 석등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나타낸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석탑과 석등이다. 또한 조성연대와 조성연기 및 후대의 중수기록등이 음각으로 기록된 탑지(塔誌)가 발견되서 더욱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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