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낮은 구릉지에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성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장 소서행장이 일본군의 호남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하여 쌓은 왜성이다. 순천왜성은 왜교 또는 예교(曳橋)라 하며 일본사람들은 순천성이라 부르고 있고, 1997년 1월 1일 국가 사적 제49호에서 해제되기 전까지는 ‘승주 신성리성’으로 불려왔다.
순천 왜성에서 정유재란의 마지막 단계인 1598년 9월부터 11월까지 약 2개월간에 걸쳐 펼쳐진 전투가 바로 왜교성전투로서 이 전투는 광양만 해역과 해룡 일대의 육해 상에서 조선과 명 측의 수륙연합군과 소서행장 휘하의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정유재란 최대의 결전이었고 11월 19일에 있는 노량해전을 끝으로 임진정유재란은 막을 내렸다.
순천 왜성은 거주주체에 따라 군사적으로 방어 목적을 지닌 왜성(倭城)이고, 지형에 따라 구릉에 가까운 낮은 산마루(山頂)에 있는 산정식산성, 지리적 위치에 따라 해안성(海岸城), 축성재료에 따라 석성(石城), 중복도에 따라 복곽성(複郭城), 폐합여부에 따라 폐합성(閉合城)으로 구분된다. 성벽은 외성(外城) 3첩과 내성(內城) 3첩으로 축성하였는데 내성만이 그 흔적이 분명하고 외성은 분명치 않다. 외성이란 해자(垓子) 밖에 있는 낮은 산의 외곽을 돌아가고 있는 성을 의미하고 내성은 유구가 뚜렷한 석성이다.
왜성은 1938년 조선 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1934년 제정)에 의거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어 오다가 1962년에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국가사적 제 49호(지정 명칭 : 승주 신성리성)로 승계되어 왔다(면적 : 내성 외성을 포함 총 97,096평). 1996년에 문화재관리국에서 일제 강점기에 지정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실시한 뒤에 신성리성(국가지정 당시 명칭)을 1997년 1월 1일에 국가사적에서 해제하였고, 사적에서 해제하면서 이 성을 왜성임을 명기토록 하면서 도지정문화재 지정권고를 하였다(자료: 순천시청 문화관광)
방문일시: 2014.12.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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