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였으며,봉정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천등산은 원래는 대망산이라고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봉황이 머물렀다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 311호인 대웅전,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이 있다. 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 최근에는 영국의 여왕이 다녀가기도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방문일시: 2014.9.21(일)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2층누각으로 1680년(숙종6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하는 이 건물은 원래 덕휘루라고 불리웠으나 언제부터 만세루로 바뀐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건립후 여러차례 보수가 있었다고 한다. 규모는 정면 5칸,3칸이며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만세루는 17세기 후반의 건축수법의 특징적인 모습이 잘 나타나 있어 조선중기 건축사 연구에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다
스님들이 경전을 연구하고 강의하던 강당으로, 특히 능인 대덕께서 의상스님의 제자인 관계로 이곳을 비롯해서 화엄사찰들은 화엄경을 강의하였기에 화엄강당이라 하였다(보물 제448호)
경전을 연구하고 강의하던 건물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후불탱화(보물 제1643호)는 1713년 제작된 불화로 재질은 비단이며, 불교회화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원만한 상호묘사와 균형잡힌 신체묘사, 유려한 필치,금니의 화문 등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불화의 특징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툇마루에서 바라본 만세루
안정사 석조여래좌상은 안동군 월곡면 미질동에서 발굴된 것으로 그 곳에 있던 안정사에 보관되어 있었다. 본래는 연화좌대(蓮花座臺)에 안치된 석불상인데 안정사 주지가 방에 안치하면서 금분을 칠해 원형이 다소 손상되었다.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는 없어졌다. 그 뒤 안동댐 건설로 안정사가 폐사 되면서 1973년 부터 봉정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신체에 배해 작은 불두(佛頭)에는 나선형 머리카락(螺髮)과 큼직한 살상토가 표현되었다. 당당하고 둥근 어깨에서 느껴지는 양감에 비해 가슴은 대체로 평평하며, 결가부좌를 튼 하반신을 높게 표현하여 안정감이 느껴진다. 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
이 불상의 약식은 통일신라 하대의 그것과 유사하므로 제작시기를 9세기 경으로 추정한다(경상북도유형문화재 44호)
극락전 앞에 있는 3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3,5m의 자그마한 규모로써 석탑의 전형을 충실히 따른 이중기단에 3층 탑신의 석탑으로 상륜부가 비교적 충실하게 보존되어 있다(경북유형문화재 제 182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으로, 1972년에 해체보수시 발견된 기문장처에 의해서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나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심포양식의 목조건물로 판명되었다. 건축양식으로는 신라시대 양식으로 거의 1천 년이 넘는다.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불을 봉안해 놓았다(국보 제15호)
참선수행하는 선방으로, 정면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1616년에 크게 중수하고 1969년에 보수하였다
영산암(경북민속자료 제126호)은 봉정사의 부속암자로 주 법당은 응진전(나한전)이며 법당에는 흙으로 조성된 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좌우로 16아라한이 모셔져 있다.암자의 구조는 사찰의 전통적인 "ㅁ"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정자(명옥대)는 현종6년(1665)에 사림(士林)에서 옛날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이 후학들에게 강도(講道)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누각형(樓閣形) 정자(亭子)이다. 봉정사 어귀의 좌측 석간수가 흐르는 계곡 건너 방형 일곽의 흙담속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정자이다. 봉정사의 동문에 여러 층으로 된 기암이 있는데 그 높이가 두어 길이 쏟아지는 것이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다.
옛 이름은 ′낙수대(落水臺)′였으나 육사형(陸士衡, 名 機)의 초은시(招隱詩)에 ′나는 샘이 명옥을 씻어내리네(飛泉漱鳴玉)′라는 글귀를 따라
명옥대(鳴玉臺)로 개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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