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전라권

강진(장흥) 수인산

그리운 바람길 2012. 11. 20. 20:18

 장흥군과 강진군 경계를 이루고 있는 수인산은 표고가 561.2m이지만 그 높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웅장하고 오묘한 산세를 지니고 있는 산이다.고려 말부터 조선말까지 전라병영성의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왜구가 침범할 때마다 장흥, 강진, 보성, 영암, 주민들이 피난하여 왜구를 막을 목적으로 축성했다는  수인산성은 유치면 수덕마을과 장흥읍 성불리, 강진군, 병영면에 걸쳐 산마루를 이어 자연석을 이용해 높이 5m, 너비4m 규모로 쌓은 석성으로 전국에서도 유일하게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총 연장이 6km에 이른다. 동문 터가 위치한 계곡을 제외하면 사방이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수인산성 안에 솟아 있는 정상 노적봉에는 봉화대가 설치돼 남해로부터 왜적의 침입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전남 지방기념물 제59호로 지정돼 있다. 병영면소재지에서 바라보면 알을 품은 듯 한 정상의 노적봉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가 온통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천혜의 요새지로서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철옹성 같은 산세를 보여준다.
 정상부에 올라서면 산 아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평원을 연상케 하는 넓은 억새밭이 있고 정상의 노적봉은 마치 거대한 왕릉처럼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산행일시: 2012. 11. 18(일)

산행코스: 지로리 상림마을(주차장,화장실)-홈골제-수인사-병풍바위-서문-느티나무숲-북문(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정상으로 바로 가는 길, 좌측능선으로 오르면 동문갈림길을 거쳐 정상으로 오를수 있다)-동문갈림길-수인산정상(노적봉)-북문(갈림길)-남문-481봉-278봉- 홈골제-상림마을(공용주차장,화장실) 

 

(산행후 병영마을 돌담길(등록문화재 제264호)-성동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85호)-하멜기념관-병영성지-병영성 홍교-석장승 관람후 귀가)

 

 

 

 

 

 

 

 

 

 

 

 

홈골제에서 바라본 남근바위와 병풍바위. 좌측 삼각형으로  솟아있는 산이 수인산 정상인 노적봉. 우측 능선은 하산코스

 

 

수인사

 

 

서문

 

 

 

 

 

 

남근바위 옆 바위전망대에 올라서 바라본 풍경. 발아래 홈골제와 상림마을, 병영성지가 보이고 우측에 월출산이 보인다

 

 

 

 

 

 

 

 

서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도중 바라본 수인산 정상(노적봉). 좌측 능선을 따라 돌아 동문갈림길(정상 좌측 뾰족한 봉우리)에서 정상으로 ...

 

 

 

 

수리봉으로 가는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수리봉코스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수인산코스만 돌기로 한다)

 

 

 

 

 

 

 

 

 

 

 

 

 

 

 

 

 

 

 

 

 

 

 

 

 

 

 

 

 

 

 

 

 

 

 

 

 

 

 

 

 

 

 

 

 

 

 

 

하멜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하멜보고서』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강진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하였다.

 

 

 

 

 타원형의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하멜기념관은 하멜이 표착한 남도의 섬을 상징하며, 오른쪽 각진 형태의 건물은 망망대해에 표류한 조난선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상징한다. 전시실은 『하멜보고서』를 비롯하여 하멜의 생애,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문화·역사적 상황, 그리고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의 자매결연 등 각 주제별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있다. 하멜기념관은 1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70여 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전라 병영성은 조선조 500여년간 전라도 육군의 총 지휘부였던 곳으로 1417년(태종 17) 본래 광산현에 설치되어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이설한 것이다. 초대 병사인 마천목 장군이 축조한 것이며, 꿈속에 계시를 받아서 눈의 자국을 따라 축조 하였다고하여 설성이라고도 하는데 평지에 축조된 성으로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 총 연장은 1,060m이다.
 1599년(선조 32) 도위수 권율의 상소로 일시 장흥으로 이설되었다가 1604년 다시 당초의 위치로 옮겨 왔으며, 제주도에서 표류 중이던 네델란드인 하멜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7여 년 동안을 억류되어 있기도 했다.

 

 

조선후기에 들어와서는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으로 병영성이 함락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복구가 되지 못하고 폐영되었다.

 

 

 홍교 입구에는 문인상과 무신상의 석장승 2구가 세워져 있는데, 병영성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듯 늠름하고 야무진 병사의 모습을 띠고 있다. 석장승과 홍교,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배진강이 서로 어우러져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한다

 

 

 병영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남해 지역의 외침을 방어하기 위하여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되어 500여 년 동안 호남을 지켜온 군사 요충지였으며 홍교는 병영의 관문이었다. 이 홍교는 일명 배진강 다리라고도 하는데, 장방형 화강석재 74개를 26열로 정교하게 무지개처럼 쌓고 잡석을 채워 보강한 다음 점토로 다리 위를 다졌다.

  

 

 홍예의 상단 중앙에 돌출시킨 용두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