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뇌룡정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자리잡고 있는 뇌룡정은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남명 조식이 지은 정자로, 1900년대 초 허위 등이 고쳐 지었다. 조식은 48세 때 합천군에 뇌룡정과 계복당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뇌룡정이란 장자에 나오는 "시거이용현, 연묵이뢰성(尸居而龍見 淵默而雷聲):시동(尸童: 옛날 신주가 없이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을 대신하여 제사상 앞에 소상처럼 앉아있는 아이)처럼 가만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용처럼 나타나고, 깊은 연못과 같이 묵묵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우뢰처럼 소리친다.’" 서 따 온 것이다. 정자는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남명은 뇌룡정시절 단성현감 사직소(丹城疏: 乙卯辭職疏)에서 "자전(慈殿:당시 수렴청정을 하던 문정왕후를 지칭)은 생각이 깊으시나 깊은 궁중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명종)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을 잇는 한 고아일 뿐입니다(慈殿塞淵, 不過深宮之一寡婦, 殿下幼沖, 只是先王之一孤嗣)"라는 과격한 표현을 써 조야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자료: 합천군청 문화관광)
답사일시: 2011.12.24(토)
2008년도 사진은 참고로 최근 사진과 함께 올려본다
뇌룡정 옆에는 양천강이 흐르고 있다. 여름이라서 수량이 많아 보인다
남명 선생은 48세 되던 해(1548년) 2월 어머니 상을 마치고 삼가 토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30세때부터 처가가 있는 김해 신어산 밑의 탄동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온 것이다. 이때 공부하러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아 뇌룡사(雷龍舍)를 지어 공부하는 곳으로 삼았다. 또한 뇌룡사 건너편 산기슭에 계부당(鷄伏堂 : 닭이 알을 품는다는 뜻)을 지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근처 절벽에는 선생이 노닐던 곳인 영파대(暎波臺)가 있었다고 한다
용암서원 앞에는 남명이 450여 년 전 단성현감직을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문을 새긴 돌비석이 있다. 이른바 '을묘사직소'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감히 신하가 이런 상소문을 올릴수 있을까?
2007년 4월 25일 뇌룡정 옆에 새로 조성된 용암서원
넓은 주차장도 새로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