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람/전라권

여수 진남관

그리운 바람길 2012. 1. 31. 00:05

 진남관 터는 조선시대 사백여 년 간 조선 수군의 본거지로 이용 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진남관은 여수를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로, 여수시 군자동 472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이곳은 원래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로,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진해루 터에 75칸의 대규모 객사를 세우고,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鎭南館' 이라고 이름 지었다.

 

 객사는 성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관아와 나란히 세워지는 중심 건물로, 중앙 정청 내부 북쪽 벽 앞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함을 두고, 관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날마다, 또 나라에 국상과 같은 큰 일이 있을 때 이 전패에 절하는 '향궐 망배'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지방 관리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시듯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던 곳이다.

 

방문일시: 2012.1.28(토)

방문코스: 향일암-금오산-향일암-은적사-오동도-진남관-하멜등대

 

 

 

 

 

 

 

 

 

돌로 만든 사람의 모습이다. 여수는 임진왜란 때 해전의 격전지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전라좌수영으로 있던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 역시 그와 인연이 깊은 유물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드느라 한창일 때 왜구의 공격이 심해지자 이를 막기 위해 7개의 석인(돌사람)을 만들어 사람처럼 세워 놓았는데, 이로써 적의 눈을 속이어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한다. 원래의 7기 중에서 지금은 이것 하나만 남아있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손은 팔짱을 꼈으며 그 위로 도포자락이 늘어져 있는 모습으로, 시선은 유유히 적을 바라다보는 듯하다

 

 

 

 

 

 

 

 

군자동 472번지 진남관 앞 뜰에 세워진 석주 화대는 돌기둥에 화대를 설치했던 것으로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 충무공이 휘하 수군들의 야간 조련을 위해 사용한 유물 중 하나로 보여진다. 당시에는 모두 4개의 석주 화대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2개만 남아있다

 

임란 유물 전시관에는 호좌수영지(1847년간), 호남읍지(1871년간) 등의 자료를 근거로 제작된 전라좌수영성의 축소모형이 상설 전시되어 있는데, 이 모형은 축척 1/200의 크기로 축소 제작된 것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성곽형태와 성벽, 남문, 동문, 성내 관아 및 민가, 포루, 해자, 연못 등을 연출 함으로서 좌수영성의 실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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