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사지는 웅장한 암산인 황매산 중복의 좁은 대지에 자리잡았다. 사지 주변에는 부락이나 민가가 없으며 30여호로 된 덕만부락을 동북쪽으로 멀리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사지는 주요부분은 중앙부가 돌출한 2단의 장대석으로 쌓아 올린 축대로 계단 모양의 대지에 있다.
하단 축대 위에는 중앙 돌출부에 중간지가 있고 그 좌우로 회랑으로 보이는 초석들이 몇 몇 남아 있으며, 중간지 앞은 계단지가 반파되어 석재가 노출되어 있다. 상단 위에는 금당지로 보이며 금당 기단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기단 상면에는 원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초석이 약간 남아 있다. 하단 축대와 상단 축대가 형성하는 평지 중앙에는 앞쪽에 통일신라 최말기의 것으로 보이는 3층 석탑(보물 제480호)이 있고 그 뒤쪽에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이 있다.
이 사지의 각종 시설에는 다른 사지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부분이 적지 않다. 즉 금당지가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돌출부 좌우에 장대석에서 각출해 낸 계단이 있는 점, 금당지 면석에 안상이 있으며 후면을 제외한 3면의 각각 2개소에 사자 또는 개로 보이는 동물을 부조한 점, 서남쪽 건물지의 기단 정면 좌우에 계단이 있는점 등이 비교적 희귀한 것이며 경내에 산재하는 석조각물에도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있다
이 석등(石燈)은 8각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등 양식에서 간주석(竿柱石)을 사자로 대치한 형식이다. 하대석(下臺石)에는 8엽단판의 복련이 조각되었고 꽃잎 속에는 화형(花形)이 장식되었다. 상면에는 각형과 호형(弧形)의 괴임이 있고, 한 돌에 붙여 쌍사자를 세웠는데 가슴을 대고 마주서서 뒷발은 복련석 위에 세우고 앞발은 들어서 상대석을 받들었으며,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기와 꼬리, 몸의 근육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상대석에는 하대석에서와 같이 꽃잎 속에 화형이 장식된 단판 8엽의 앙련(仰蓮)을 조각하였다. 8각의 화사석(火舍石)은 한 돌이며 4면에 장방형 화창(火窓)이 있고, 나머지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어 있다. 8각의 옥개석(屋蓋石)은 평박(平薄)한데 아래에 1단의 넓은 받침이 있으며 처마밑선은 수평이고 추녀 위에는 귀꽃이 조각되어 있으며 상륜부(上輪部)는 전부 없어졌다.
이 석등은 1933년 일본인이 반출하려다 미수에 그쳐서 가회면사무소에 보관해 오다가
1959년 원 위치에 복원하였는데 법주사 쌍사자석등(法住寺 雙獅子石燈)에 버금가는 걸작이다
이 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방형의 탑신부를 갖춘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탑이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기단 중석을 한 데 붙여 조각한 4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는데 기단 중석에는 양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1주를 조각하였다. 경사진 갑석 상면에는 호형(弧形)과 각형의 괴임을 조각하였다.
상층기단 중석은 모두 4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였는데 하층기단과 마찬가지로 모서리에 우주가 있으며 각 면은 탱주로 양분되었다. 갑석(甲石)은 아래에 부연이 있으며, 상면에는 각형의 괴임이 2단 조출(彫出)되어 있다. 탑신부는 각 층마다 옥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별석으로 만들었는데 옥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비교적 얇으며, 처마밑선은 수평을 아루며 옥개받침은 각 층 4단으로 줄었다. 상륜부는 전부 없어졌으며 3층 옥개석 상면에 찰주공(擦柱孔)이 있다. 이 탑은 옥개석의 받침수가 4단으로 줄어 탑의 규모가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결구하고 다듬은 수법이 정교하며 당당한 위풍을 지니고 있다.
이 귀부 2기는 법당지의 동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모두 비신과 이수(螭首)는 결실되었다. 동 귀부는 서 귀부에 비해 규모가 클 뿐, 직립한 목과 용두화(龍頭化)된 귀두(龜頭),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 등 조형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동 귀부의 등갑(背甲)에는 전면에 복선의 귀갑문(龜甲文)을 조식하였고,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碑座)의 측면에는 사실적으로 표현한 인동운권문(忍冬雲卷文)을 조각하였다.
서 귀부는 동 귀부보다 평박(平薄)한데 등갑에는 복선귀갑문(復線龜甲文)과 유려(流麗)한 인동문(忍冬文)을 조각하였다. 비좌의 4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상면 주연(周緣)에는 연판문을 조식하였는데 대체로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귀부의 양식, 주위 석조유물 등과의 관련을 고려할 때 조성 시기는 9세기말경으로 추정된다.
2009년7월 답사시 모습
2009년 7월 답사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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